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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제서, 윤리학 관점에서 재해석

by SINNANDA 2025. 4. 25.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포제서(Possessor)는 인간의 자율성과 윤리적 주체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지배 문제를 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첨단 기술이 인간 정체성과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하며, 윤리학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타인의 육체를 이용해 범죄를 실행하는 설정은 인간에 대한 도구화와 주체의 해체를 상징하며, 이는 윤리 철학 전반에 걸쳐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본 글에서는 윤리학의 핵심 개념인 인간 존엄성, 도덕적 판단, 자율성을 중심으로 영화 포제서를 재조명해본다.

 

영화 포제서 포스터

인간성 파괴: 주체와 객체의 윤리적 전도

영화 포제서는 인간의 신체를 빌려 타인을 살해하는 암살 조직과 그 요원 ‘타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타샤는 다른 이의 몸을 조종하면서 점차 자신의 감정과 인격을 잃어간다. 이는 단순히 극적인 설정이 아닌, 윤리적 정체성의 붕괴를 상징한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하며, 어떤 경우에도 타인을 단지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타샤는 끊임없이 타인을 수단으로 활용하고, 영화 속에서 대상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잔혹한 범죄에 연루된다. 이는 윤리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주체’ 개념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타샤는 자신이 조종한 사람의 기억과 감정에 동화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혼란스러워한다. 이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이다. 윤리학에서는 도덕적 판단과 책임은 명확한 주체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주체의 불분명성은 결국 책임의 회피로 이어지고, 이는 도덕 체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타인의 인격은 파괴되고, 조종자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이러한 설정은 인간이란 존재가 어디까지 자기결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묻는 강력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인간의 육체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닌, 외부 세력에 의해 쉽게 침범되고 조작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한 세상을 묘사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상실의 시나리오로, 생명윤리와 기술윤리의 경계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주제다. 윤리적 사고는 인간을 고유한 인격체로 바라보고 그 존재를 존중할 때 가능하다. 포제서는 그러한 윤리적 틀을 무너뜨리는 과정 속에서 관객에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을 되묻는다.

도덕적 판단의 해체: 감정과 선택의 분리

도덕적 판단은 일반적으로 ‘선택’이라는 행위와 그것을 수행하는 ‘감정’의 조화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포제서는 이 둘의 분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타샤는 타인의 몸을 조종하는 임무를 반복하면서 점차 감정이 마비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도 퇴화한다. 그녀의 임무는 냉정하고 계산된 방식으로 수행되며, 희생자에 대한 공감이나 죄책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윤리학에서 강조하는 ‘감정 기반 도덕 판단’의 부재를 드러낸다.

감정이 없는 판단은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타샤는 임무 수행을 ‘작전’으로만 인식하며, 타인의 고통이나 생명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공리주의와 결과주의의 위험성을 엿볼 수 있다. 결과만 중요시하는 관점에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이나 도덕적 위반은 쉽게 무시된다. 하지만 윤리학에서는 행위의 ‘과정’ 또한 도덕적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감정과 책임을 수반하는 선택이 진정한 도덕적 판단임을 강조한다.

더불어, 영화는 감정과 선택의 분리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기술과 업무 효율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감정은 종종 ‘비효율’로 간주된다. 포제서에서 타샤는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더욱 능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이는 시스템 내에서는 이상적인 상태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이는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인간성을 희생시키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감정이 배제된 판단은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도덕적 감수성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현상을 경고한다.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도덕적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렵다. 포제서는 감정이 사라진 사회가 어떤 윤리적 위기를 맞이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인간다움의 핵심이 감정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자율성의 상실: 기술과 권력의 문제

자율성은 윤리학에서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규정짓는 핵심 가치 중 하나다. 자율적인 판단과 선택이 가능할 때 인간은 도덕적 책임을 지는 존재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포제서는 기술이 인간의 자율성을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를 매우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타인의 의식을 해킹하고 조종하는 기술은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정한다. 신체는 외부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고, 정신은 점점 침식당한다.

타샤는 기술을 통해 타인의 신체를 완벽히 제어할 수 있게 되지만, 동시에 자신의 자율성도 잃어간다. 반복되는 침투와 조종 과정은 그녀에게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며, 이는 도덕적 판단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기술이 인간을 확장시키는 도구가 아닌,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될 때 윤리적 경계는 명확히 설정되어야 한다. 영화는 자율성 상실의 과정이 어떻게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는지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며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기술의 배후에 존재하는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 조직은 기술을 이용해 인간을 조작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윤리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권력은 도구를 가진 자에게 집중되며, 인간은 쉽게 소모되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는 현실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문제다. 인공지능, 감시 시스템, 빅데이터 등은 인간의 선택을 제한하거나 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대한 윤리적 논의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포제서는 자율성이 제거된 인간이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면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에 대한 윤리적 존중 또한 강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인간의 자율성을 지키는 일은 곧 인간성을 보호하는 일이며, 기술은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 도구 그 이상이 되어선 안 된다. 윤리학적 시선에서 볼 때, 영화 속 설정은 단순한 공상이 아닌, 우리 사회가 반드시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문제들이다.

 

 

포제서는 인간성, 도덕성, 자율성에 대한 윤리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타인을 조종하는 설정은 인간을 수단화하는 시스템의 위험성을 드러내며, 감정 없는 판단은 도덕적 판단의 붕괴를 상징한다. 또한 자율성이 상실된 사회는 인간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여전히 윤리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가? 선택과 감정, 책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포제서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윤리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