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미키17, 정체성과 윤리를 묻는 복제인간 이야기

by SINNANDA 2025. 4. 10.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고,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을 맡은 SF 영화입니다. 원작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Mickey7』으로, 인간 복제라는 주제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 ‘의식과 자아는 복제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단순한 미래의 기술 묘사나 액션 중심의 SF 영화와 달리, ‘미키17’은 철학적 주제의식을 품고 관객을 사유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작품입니다. 복제인간의 존재 의미, 기억과 자아의 정체성, 생명의 윤리적 경계 등은 지금 이 시대가 마주한 과학기술 발전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미키17’이 보여주는 복제인간의 철학과 인간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색해보겠습니다.

 

복제인간과 자아 정체성

‘미키17’에서 주인공 미키는 죽을 때마다 새로운 육체로 다시 태어나는 ‘소모용 인간’입니다. 우주 개척이라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그는, 죽음이 반복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육체는 반복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기억과 감정은 복제된 형태로 이어지기에 그는 동일한 인격체로 간주될 수 있을까요?

이는 ‘정체성의 연속성’이라는 철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데이비드 흄은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억의 연속이라고 했고, 존 록은 ‘기억이 곧 자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키는 동일한 자아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신체, 새로운 경험이 더해지며 자아는 변화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아는 여전히 같은 자아일까요?

영화는 이처럼 관객에게 자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게 만듭니다. 육체와 자아, 기억과 감정이 결합된 존재가 인간이라면, 복제된 육체에 이전의 기억을 이식한 존재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란 ‘유일함’으로 정의되는 존재인지, 아니면 ‘경험의 총합’으로 구성되는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이 영화 전반을 관통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미래의 생명공학이 도달할 수 있는 경계이자, SF 장르가 품을 수 있는 철학적 깊이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윤리적 딜레마와 인간성

복제인간은 과연 인간일까요? ‘미키17’은 이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며 윤리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영화 속에서 미키는 위험한 일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며, 그의 죽음은 하나의 ‘소모품’처럼 다뤄집니다. 복제된 존재에게는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동시에 생명의 존엄은 철저히 무시당합니다. 이는 생명공학이 실제 현실에서 안고 있는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도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키는 감정이 있고, 공포를 느끼며,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그를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세계는 그를 하나의 ‘자원’으로만 취급합니다. 이는 기술 발전이 인간성을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복제된 존재끼리 충돌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정체성의 경계가 무너지는 공포가 그려집니다. 한 존재가 또 다른 자신의 존재와 공존할 수 있는가, 혹은 누가 ‘진짜’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있는가. 인간 중심적 가치관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 같은 질문은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통찰을 안겨줍니다. 미키의 고통과 자기 탐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이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사유하게 만듭니다.

SF영화 속 인간 정체성의 진화

‘미키17’은 기존 SF 영화들이 다루었던 복제인간 서사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접근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블레이드 러너’는 안드로이드의 감정과 자아를 통해 인간성과 기계성의 경계를 탐색했고, ‘엑스 마키나’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미키17’은 이보다 더 나아가, 인간의 반복 가능성과 자아의 확장성에 주목합니다.

무한한 복제와 반복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고유할 수 있을까? 관객은 미키의 시선을 통해, 매번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통과 함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봉준호 감독 특유의 서정적 연출과 사회 비판적 시각이 SF 장르의 경계를 확장시킵니다. 단순한 기술 묘사가 아닌, 인간의 감정과 윤리, 내면의 불안을 중심에 둔 전개는 기존 SF 작품과는 차별화된 인상을 남깁니다.

영화는 단지 ‘복제는 가능한가’가 아니라, ‘복제된 존재는 인간인가’, ‘기억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존엄성은 무엇에 의해 정의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철학적 사고로 이끕니다. 이는 단순한 오락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를 되묻는 SF 장르의 본질적 기능을 되살리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미키17’은 단순한 SF 영화가 아닙니다.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 정체성과 자아의 본질, 생명윤리의 경계를 철저히 탐색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왔던 ‘인간’이라는 개념을 해체합니다.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인간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기억, 감정, 고통, 희생…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면, 복제된 존재도 인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다시 귀 기울이고 싶다면, 영화 ‘미키17’을 반드시 감상해보시길 권합니다.